세상 속 다양한 것들이 그렇듯, 공동체 또한 언제나 위기 속에서 다시 정의되곤 한다. 아니, 애초에 ‘정의’라는 것이 가능한가조차 의문이다. 공동체는 어떤 이상적인 공동의 형태가 실현되는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순간—해체, 전쟁, 고립의 반복—의 가장자리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붙잡으려는 고투 속에서 새롭게 출현한다. 따라서 공동체란 함께 존재하는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되묻기이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존재 방식을 탐구하려는 불완전하고 열린 시도이다.

 블랑쇼는 또 하나의 독특한 구절을 남긴다. “공동체는 죽음 앞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 문장에서 낭시의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죽음의 경험이 공동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함께 실패’하는 자리에서 공동체가 열린다고 본다. 즉, 서로를 대신해 죽을 수 없는, 철저히 비대체적인 존재들이 함께 고립되어 있다는 이 절망적 조건에서 공동체는 역설적으로 피어난다.

 결국 『밝힐 수 없는 공동체』는 ‘함께 있음’이라는 가장 단순한 조건이, 동시에 가장 설명 불가능한 사건임을 고백한다. 이 공동체는 그 어떤 긍정의 원리로도 환원되지 않으며, 함께 있음의 감각은 언제나 언어 바깥, 이해 바깥에서 미끄러진다. 그 미끄러짐을 받아들이는 태도 — 그것이 바로 블랑쇼가 말하는 공동체다.